나를 사랑하는 것
어떻게 심장은 사랑의 상징이 되었을까? 과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심장은 감정과 영혼과의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믿어왔다. 영혼의 중심지이자 모든 감정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사랑에 빠졌을 때 그들의 심장은 더 빨리 뛰고 혈압의 증가로 가슴에 떨림 같은 신체적인 감각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심장을 닮은 하트는 예술, 문학, 대중문화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낭만적인 사랑과 우정에서 연민과 공감에 이르는 사랑의 많은 측면을 상징하는 모양이 되었다.
이 지점. 사랑의 다양한 측면에서부터 박시유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여성으로서 소모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는 험난한 사회를 홀로 설수 없었기에 전투적인 모습을 갖춰야 했고 보이는 것의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 대가를 지불하고 열심히 달려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화가의 길에서 가장 상처받은 것은 작가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 완전히 지친 영혼의 에너지는 바닥나버렸고 자신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I love myself'는 목적 지향적인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를 발견하기를 말하는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애썼던 몸부림에서 벗어나 존재적으로 사랑받기를 외치는 것이다.
그렇게 하트를 그린다. 비어있는 캔버스에 색을 입히고 선을 따는 작업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손바닥만 한 공간을 그리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작품 하나에 들어가는 시간은 도를 닦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작품으로 위로받을 관람객을 위해 매일매일 작품에 매달린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며 진정한 자아로의 발견으로 초대한다.
나의 몸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수를 느끼며 살아있음에 안도함과 동시에 나를 더 사랑해 줄 힘을 얻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하트가 주는 사회적 상징으로 인해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을 소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관람객이 느끼는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이 부재한 시대에 사랑을 말하는 작품이 되었다. 사랑이 담고 있는 위대한 의미에 숨겨진 희생과 고통을 사회가 끌어안을 수 있는 시대가 되기를 기도해 본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기에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재의 문제가 조금은 해결이 되는 정답을 조금 엿보면 좋겠다.